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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도시의 오래된 경관을 왜 찍을까?_로버트 파우저 Robert J. Fouserㆍ언어학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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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도시의 오래된 경관을 왜 찍을까?_로버트 파우저 Robert J. Fouserㆍ언어학자

비평그룹 시각 2020. 5. 7. 20:23

“사진 한 장은 삶의 사실을 찾아내, 그 사실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락후 라이, 인도 사진가 * 

 

인스타그램 시대의 도시 경관 촬영

지난 2010년대는 사진 역사 속의 ‘인스타그램 시대’였다. 2010년부터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의 급성장에 따라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남과 공유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웃음, 친구들과 술 한 잔, 그리고 맛있는 외식 등등을 기록하고 SNS로 공유하고 반응을 즐겁게 기다리는 행위는 일반화되었다.이러한 사진은 많지만, 일상이 다양할 만큼 SNS에서 올려 오는 사진도 다양하다. 그 중에 도시와 관련한 사진, 그 중에서도 오래된 도시 경관의 사진은 특히 흥미롭다. 그런데 도시의 오래된 경관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행위가 어디서 나타났을까? 그리고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흔히 들리는 설명은 향수이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주로 젊고 오래된 도시 지역보다 아파트가 많은 새로운 지역에 살기 때문에 향수가 있을 수 없다. 향수가 있을 수 있는 위 세대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세대마다 관심사와 라이프스타일은 다르다. 젊은 세대는 무조건 위 세대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 일부러 자기 세대에 맞는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고 한다. 위 세대보다 현재 사는 사람이 경험하지 않았던 옛 시대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을 수 있다. 젊은 세대가 한복을 입고 조선 시대 건축을 대표하는 궁궐에서 셀카 사진을 찍는 것은 향수 때문에 아니라 셀카를 위한 친숙하고 예쁜 배경을 찾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도시경관의 매력은래되어서가 아니라 언젠가 없어지기 때문

오래된 도시 경관 사진을 자세히 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많은 사진은 오래된 도시 경관 가운데 재개발 대상지나 쇠퇴하는 지역을 사람 없이 건물이나 거리 풍경 중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북촌과 익선동과 같은 한옥이 많은 지역은 예쁜 영화 세트처럼 셀카를 마음 편하게 찍을 수 있지만, 쇠퇴하는 지역의 주민을 찍는 것은 실례가 되기 때문에 찍기 어렵다. 사람보다 한국의 가까운 과거이면서도 이국 느낌이 있는 건물과 거리 풍경은 더욱 찍기 쉽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찍기 쉬운 것뿐만 아니라 더욱 매력적이다. 이러한 오래된 도시 경관의 매력은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언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도시의 한 시점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보다 없어질 도시에 대한 애착이다. 애착은 향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없어질 거라는 사실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나온다. 인간이 만들고 사람이 사는 생태인 도시 속 넓은 지역을 왜 없앨까?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내가 사는 도시 지역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많은 질문이 떠오른다.

 

사진의 역사를 보면 오래된 도시 경관을 찍던 유명한 사진가는 몇 명이 있다. SNS에 올린 수많은 오래된 도시 경관 사진과 공통점은 없어질 도시에 대한 애착이다. 유명한 사진가는 일반 SNS 이용자보다 도시에 대한 섬세한 기록을 남기려고 하는 의식이 더 강했지만, 없어질 도시에 대한 의문은 똑같다. 오래된 도시 경관을 남긴 사진가가 몇 명은 있지만 없어질 경관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갖는 두 명이 흥미롭다. 첫번째 사람은 19세기 중반에 파리의 재개발과 재구성을 담당했던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BaronGeorges-EugèneHaussmann,1809~1891)의 커다란 사업으로 인한 철거 현장을 찍던 샤를 마르빌이다. 두번째 사람은 약 100년 이후 뉴욕 맨해튼 남쪽의 재개발을 위한 철거 현장의 사진으로 유명한 대니 라이온이다. 이 두 명은 시대와 국적은 각각 다르지만 예술적 사진을 통해 없어지는, 없어질 도시 경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주는 것이다.

 

 

마르빌의 파리 재개발 현장 촬영

샤를 마르빌(Charles Marville, 본명 Charles François Bossu, 1813~1879)은 사진이 새로운 기록 매체였던 1850년대에 없어지는 파리를 기록했다. 당시 나폴레옹 3세가 파리를 화려한 제국 수도로 개조하기 위해서 오스만에게 도시 계획을 맡겼다. 1854년부터 나폴레옹 3세가 하야한 1870년까지 오스만은 중세 도시의 흔적이 짙은 길과 골목을 없애고 가로수가 가득한 넓은 길을 만들고 했다. 현재 파리에 가면 샹젤리제 거리 등과 같은 넓고 화려한 길은 오스만의 작품이다. 오스만 전에 파리는 중세에서 이어지는 좁은 길과 골목이 많이 남아 있고, 이것은 산업혁명으로 바쁜 1850년대에 후진적 이미지가 있어서 재개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미 인구 밀도가 높은 파리에 넓은 도로를 만들기 위해서 오래된 도시를 철거해야 했다. 철거 작업을 시작하면서 마르빌은 없어지는 도시를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샤를 마르빌, 철거되는 파리, 1860년대, 호주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소재

 

마르빌의 사진을 보면 현재 SNS에 뜨는 한국 재개발 철거 현장과 큰 차이가 없다. 있는 그 대로를 기록하면서 없어지는 도시 경관에 대한 애착을 느껴지게 했다. 마르빌은 19세기 중반에 유행했던 낭만적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1850년대 초부터 사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사진은 새로운 기술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마르빌은 개인적으로 연습하면서 우수한 사진가로 알려지자 1862년에 파리의 공공 사진가로 임명되었다. 1854년부터 오스만의 계획에 따라 철거 공사가 시작되면서 마르빌은 개인적으로 철거 현장 사진을 찍었고 1862년부터 공공 사진가로서 변해가는 파리를 기록하게 되었다.

 

샤를 마르빌, 파리 재개발 전에 좁은 골목 , 1860년대, 호주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소재

 

오래된 파리가 없어지는 모습을 찍은 1860-70년대에는 카메라와 사진 현상하는 기술은 한계가 많았기 때문에 한 장 찍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카메라가 컸고 이동하기 불편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노출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람이 한 자세를 오래 지켜야 했지만 도시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마르빌은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아침 일찍 사람이 없는 거리를 찍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람이 있는 그대로 찍는다. 후자의 경우 사진에 사람의 모습이 연한 연기처럼 보여 사진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마르빌이 찍었던 시장 모습은 사람이 연한 연기로 변해 없어지는 장면 속에 이미 없어진 사람의 유령인 것처럼 보이다. 마르빌은 공공 사진가 입장에서 의도적으로 파리의 재개발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곧 없어질 도시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유령처럼 묘사하는 작품은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 커다란 도시 개발로 인해 없어진 사람에 대한 알레고리가 되었다.

 

 

샤를 마르빌, 행인은 연한 연기처름 보이는 파리 뒷길, 1860년대, 호주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소재

라이온의 뉴욕 재개발 현장 촬영

100 후에는 대니 라이온(Danny Lyon, 1942~ )이라는 작가가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을 상징하는 뉴욕의 재개발 모습을 찍었다. 라이온은 1960년대 초에 미국 흑인 인권 운동 학생 연합의 주 사진가로서 미국 남부의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의 피해 모습과 학생 운동의 활동을 찍었다. 그 후에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 중심으로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계속 했다. 그런데 뉴욕 맨해튼 남쪽에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1973~2001)를 개발하기 위해 철거하는 모습의 사진도 귀중하게 기록했다. 이 사진은 1969년에 출간된 《맨해튼 남쪽의 파괴》(The Destruction of Lower Manhattan)에 담아 194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 20년 동안 전면 철거 방식 재개발이 활발했던 시대의 마지막 순간을 찍은 것이다. 라이온은 이 사진을 흑백으로 찍었지만, 컬러로 다른 작업도 많이 했다. 라이온의 '철거되는 뉴욕 사진'을 보면 마르빌의 신비스러운 아름다움과는 달리 거친 과격함이 느껴진다. 철거 현장이기 때문에 사람보다 파괴된 건물은 이미지의 중심이고 철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사진도 몇 장 있다. 미국은 1960년 말에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가 확산하면서 도시 파괴 사진은 TV뉴스와 신문에서 자주 나오는 전쟁의 피해와 파괴의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같은 1960년대에 여러 사회 운동 가운데 역사적 건물과 오래된 도시 경관을 위한 보존 운동이 벌어졌다. 그러한 맥락에서 라이온의 사진은 뉴욕의 재개발에 대한 반대이면서도 없어지는 도시의 폭력적 모습의 시각적 시이다.

 

빠른 변화로 인한 불안감 극복 차원의 도시 경관 촬영

샤를 마르빌과 대니 라이온의 사진을 보면 변하는 도시 경관에 대한 애착이 담아 있다. 오늘날 오래된 도시를 열심히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SNS에서 공유하는 사람과 똑같다. 그 공통점은 도시가 변화하는 내용보다 변화의 속도로부터 나오는 불안감이다. 19세기와 20세기 변화의 속도는 21세기 초인 오늘날과 다르지만, 산업혁명과 디지털혁명으로 인한 변화는 당대에 빠르게 느꼈을 것이고 불안감을 유발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오래된 도시 경관의 사진은 변화의 속도가 느린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반면에 빠른 변화로 인해 언젠가 없어질 경관을 찍는다는 것도 안정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 SNS에 올려오는 많은 사진은 결국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행위의 단순하고 애착이 가득한 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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